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로고

[박민식 컬럼] 조국(祖國)의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4/07/08 [15:06]

[박민식 컬럼] 조국(祖國)의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

시사앤피플 | 입력 : 2024/07/08 [15:06]
본문이미지

▲ 박민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경제산업위원장)    

 

조국 바람의 진원지는?

 

조국의 바람이 불었다. 24.25%의 정당투표율, 687만 4278표, 의석 12석. 개혁신당 102만5775표, 새로운 미래 48만3828표를 압도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10석의 돌풍을 넘어선 태풍의 바람이다. 광주 47.72%, 전남 43.97%, 전북 45.53%, 동일한 지역에서 각각 36.26%, 39.88%, 37.63%를 득표한 더불어민주연합을 제쳤다. 광주에서는 10%를 앞질렀다. 이 바람이 잠시 분 바람인가? 계속 몰아칠 바람인가? 그래서 이 바람의 근원지를 반드시 들여다 봐야겠다.  .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라는 비호감 캐릭터에서 얻은 반사이익, 비조지민(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지역구는 민주당)이라는 전략의 성공, ‘3년은 길다, 검찰 독재 조기 종식‘, ’수사권/기소권 완전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검찰개혁,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정면 승부한 ’한동훈 특검법 1호 법안 발의‘ 등의 슬로건 및 공약을 통한 성과 등으로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태풍이 되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조국의 바람이 시작된 근원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조국혁신당 안에서 불어온 바람이라기보다는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기 때문이다. 

 

저항투표인가? 대안인가? 

 

선거 직후 동아시아연구원(EAI : East Asia Institute)은 22대 총선 표심 분석과 정치개혁 과제 콘퍼런스에서 이 바람의 원인에 접근한다. ‘기존에 지지하던 정당이나 정당의 인물에 실망해서 제3당으로 표를 이전한다'는 것을 정치학에서는 ‘저항투표’라고 한다. 이 바람이 ‘저항투표’였을까? 동아시아연구원(EAI) 정연경 박사는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투표 결정 요인 분석‘이란 발제에서 과연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족이 정말로 신당의 투표로 이어졌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한다. 정연경 박사는 이러한 ‘저항투표’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나는 기존 지지하던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야 하고, 또 하나는 이를 표출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 정당이 있어야 한다. 과연 기존 거대 양당에 대한 불만으로 ‘유권자들이 표를 이전한 것인가?’, ‘무당파가 움직인 것인가?’, ‘신당에 대한 호감도가 작용한 것인가?’ 

 

이 분석을 따라가 보자. 신당 투표자는 누구였는가?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을 투표한 유권자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국혁신당은 40~50대의 지지를, 개혁신당은 20대와 50대의 지지를 받았다. 50대 응답자 중 약 34%가 조국혁신당을 선택했다. 조국혁신당은 5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이후 조국혁신당이 정책을 수립하는데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둘째, 조국혁신당은 호남 지역 유권자의 지지를, 개혁신당은 강원·제주 지역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광주·전라 지역 응답자의 약 43%가 조국혁신당에, 강원·제주 지역 응답자의 약 10%가 개혁신당에 투표하였다.

 

셋째, 두 정당 모두 중산층 및 상위층의 마음을 움직였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400-500만원인 응답자가 약 30%, 500-600만 원이라고 응답한 유권자가 26%가 조국혁신당에 투표하였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600-700만 원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약 8.6%가 개혁신당에 투표하였다. 

 

넷째, 조국혁신당에 투표한 상당수는 진보적 유권자다. 현재도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있고, 이념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가깝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다. 반면, 개혁신당 투표자 상당수는 중도적 유권자다. 기존 거대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는 미래통합당을 지지한 비율이 높았다. 즉, 두 신당 투표자들은 모두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기존 거대 양당 지지자들이었다. 22대 총선에서는 제3당으로 이전하여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즉, ‘저항투표’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들은 기존 지지 정당을 완전히 이탈한 것일까? 아니면 일시적으로 항의하는 것일까? 해당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조국혁신당 투표자의 경우 민주당에 대한 ‘일시적 항의’의 의미로 ‘저항투표’를, 개혁신당 투표자의 경우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대한 ‘완전한 이탈’의 결과로 ‘저항투표’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조국혁신당 투표자의 대부분은 과거에는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했고, 현재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도 더불어민주당에 가장 가깝다. 즉 더불어민주당에 항의의 표현을 하기 위하여 조국혁신당에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개혁신당 지지자는 국민의힘 이탈자와 민주당 이탈자가 모인 그룹이다. 조국혁신당의 경우와 달리 기존 양당 모두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고 개혁신당을 가깝게 여긴다. 이는 일시적인 항의보다는 완전한 이탈의 의미로 저항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조국혁신당 투표자는 민주당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항의의 목소리를 냈고, 개혁신당 투표자는 기존 거대 양당 모두에 돌아섰다. 결론은 일시적 저항투표다.

 

이제 조국의 바람을 좀 더 들여다보자. 조국의 바람은 대안에 대한 기대가 아닌 저항투표다. 받아들여야 한다. 윤석열 국정 운영의 불만이 조국으로 향한 것이 아니다. 이 불만은 조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도 향할 수도 있었다. 바람의 진원지는 진보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이에 대한 조국혁신당의 역할에 기대였다. 일시적인 바람이 아닌 돌풍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가 무엇인가? 권력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에 대해 다시 묻는다, 사람을 찾는다! 

 

절대 기준을 잃어버린 시대다. 개인의 번영과 풍요라는 가치만이 압도적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절대 가치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현대 정치도 그 궁극역할을 상실했다. 정치가 풍요가 절대 가치라는 조작에 오히려 가담하고 있다. 

 

미래는 불안하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세계의 운명이다. 초고령화, 저성장, 경기침체 등의 추세도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환경, 코로나 변이 등 통제할 수 없는 외생변수도 계속 늘어난다.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안은 정권에 대안 불만이 아닌, 정책 부재에 대한 대안이어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계속 불 것이다. 

 

그래서 잠시 멈춤 또는 후퇴도 필요하다. 번영을 경험한 세대는 후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풍요를 경험한 그들에게 성장보다는 멈춤 또는 후퇴로 보이는 선택(분배)을 직면하게 하는 정치는 외면받기 마련이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한 세대도 멈춤이 힘겹다. 그러나 멈춤의 선택 없이는 이러한 변수에 대응할 수 없다. 높은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정치적 가치도 상실하고 정쟁만 반복될 것이다. 다른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현대 사회는 붕괴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말해준다. 독일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때문에 히틀러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역사는 경제적 붕괴 앞에 인간은 개인의 자유와 절대 가치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통제와 조작된 정치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핵의 정치는 더 위험하다. 개인의 풍요와 번영의 가치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핵은 오히려 전쟁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택된 자들에게는 번영과 풍요를 유지케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할 것이다. 신념을 잃은 정치는 이렇게 가치를 조작한다. 불안을 통해 조작된 정치는 더 쉽게 환영을 받는다. 불안이 심해진다고 탐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풍요와 번영이라는 탐욕을 양보하지 못한다. 그래서 탐욕은 조작된 평화를 향해 더 빨리 발걸음을 내딛는다. 세계화도 탐욕화가 되어 버렸다. 빈곤과 기아와 난민의 문제는 세계화가 아닌 다른 세계(우주)의 이야기인가? 실용이 가치를 덮었다. 고통도 내게만 해당되지 않으면 된다. 이태원 참사도 덮힐 수 있는 이유다. 세월호도 잊혀질 수 있는 이유다.

 

이렇게 현재의 정치가 탐욕의 길에 동행하고 있다. 명품 정치는 사라지고, 명품백(?)만이 남았다. 사람이 없다. 한국의 미래를 부탁할 사람이 없다. 아이의 모든 현재가 부모에게서 시작되었듯, 나라의 모든 현재는 나라의 지도자에게서 시작되었다.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탐욕은 방법을 찾지만, 정의의 신은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정치도 방법이 아닌, 절대 가치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길 희망한다.

 

조국의 바람이 그러하길 바란다. 세상을 아무리 흔들어도 중심을 잡고 가는 사람이길 바란다.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아픔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방향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큰바람의 방향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작은 바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작은 소리들의 무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중이 아무리 흔들어도 중심을 찾아 묵묵히 걸어야 할 방향을 잡아야 한다. 성찰은 언어를 바꾼다. 정치가 언어의 장난에 빠지면 안 된다. 언어로 사는 정치인이 아닌, 성찰된 언어로 세상을 바꾸는 바람이 되길 바란다. 혼자 있는 시간과 성찰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작은 소리 속에 방향을 잃어버린다. 일개 스님의 소리를 들을 것인가? 세상과 역사를 이끌어 온 큰 소리를 들을 것인가? 고요하고 잠잠한 듯하나, 태풍의 눈 속에 있는 조국의 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국(曺國) 때문이 아니라, 조국(祖國) 때문에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 (출처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7월 8일  컬럼)

 

박민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경제산업위원장)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시사앤피플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