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몰라 보네 이 경 재
말소리만 듣고도 알아보던 엄마가 흰머리에 주름살이 깊어 가더니 나를 몰라보고 댁은 누구냐고 물어 보네
뒷머리만 보고도 알아보던 엄마가 흰머리에 마른 대추 닮아 가더니 나를 몰라보고 어찌 오셨느냐고 물어 보네
[작품 해설] 망구(望九)의 이경재 시인께서 『저기 가는 저 구름아』를 상재하셨다. 머리말에 시의 기원은 800여 년의 기나긴 역사성이 있기에 이미 대중문화라고 정의하면서 ‘대학시절부터 50여 년을 걸쳐 그때그때 보고 느낀 것을 수록’했다고 밝혔다. 자의적인 활동이 가능한 평생 동안 시와 더불어 살았기에 3권으로 나누어도 충분한 206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엮어냈다.
모든 예술작품은 곧 그 사람이라 하듯 짧은 한 편의 시에서도 시인의 삶이 묻어 있다. 그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 시인의 지나온 삶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여 시 속에 폭 빠져든다. 시를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감정이입의 효가가 큰 이유다.
가나다 순으로 배열한 206편의 시는 앞선 세대의 가치관과 사회를 향한 목소리가 정문일침의 교훈으로 귀를 울린다. 책제(冊題)가 암시하듯 가버린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나 미수(米壽)를 앞둔 나이에 구름과 같은 자유의 염원이 담겨 있다.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요즈음 세태를 윤리와 도덕의 미풍으로 살려내고자 하는 교훈적인 시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권불삼년> <고려장> <낙하산 인사> <개가 짖고 소가 웃네> 등 시대에 맞게 세태를 풍자한 작품을 비롯하여 <까치밥> <꽁보리밥 풋고추> 등 옛정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억하게 하는 작품은 메마른 세태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전제한 <나를 몰라 보네>는 백세시대의 아픈 현상을 그대로 그려냈다. 말로만 듣고도, 뒷머리만 보고도 알아보던 그 총명하던 어머니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흰머리에 주름이 깊어지고 마른 대추 닮아 가더니 아들도 몰라본다는 치매의 아픔의 시화(詩化)다. 이 시대를 향한 사회적 문제 제기로 <노년(老年)을 어찌 할꼬>에서 더 아프게 밝혀 놓았다.
‘때가 되면/다 비워주고 떠나가는 일만 남았는데/밤사이에 잠자듯이 조용히 갔으면/죽는 복도 못타는 죄 그 죄를 어찌 할꼬’<노년을 어찌 할꼬>3연’
예전에는 나이 들면 존경받고 양보받았지만 이제는 나이 든 것이 죄인이 된 세상으로 변했다. 후대의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을 사히에 고발하는 시인의 목소리인 것이다.
이경재 시인의 시적 기교는 대부분 한시(漢詩) 작법을 현대의 자유시에 적용했다. 이는 변형을 통해 새로운 양식의 발전적인 모습으로 보여 한문을 아는 시인들이 꼭 읽어야 할 작품이다. 절구(絶句)의 요건인 대구(對句)의 형식을 살리면서 어휘의 변용을 통하여 어감의 변화를 주는 전통 기법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 이 시를 발표했으면 ‘실험시’로서 상당히 주목받을 만한 형식이다.
구름을 소재로 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보들레르의 <이방인>이다. 대화체로 된 이 시는 수수께끼 같은 친구에게 묻고 답하는 내용으로 전개한다.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그러면서 순서대로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친구들, 조국, 미인, 황금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것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하고 다그치자 “흘러가는 저 구름을, 저 신기한 구름을”이라고 답한다. 구름은 그렇게 얽매임이 없는 유유자적한 자유를 상징한다. 보들레르가 추구한 구름의 의미가 곳곳에 살아나는 시집 『저기 가는 저 구름아』의 상재를 축하하며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조계춘 시인께도 감사한다. 머리말에 밝힌 대로 “독자의 가슴에 닿는 위안이 될 수 있”기를 확신하여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 강기옥 시인/컬럼니스트(문화전문 기자) * 이 글은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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