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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의 문화칼럼] 다산을 그리며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기사입력 2023/12/18 [01:13]

[강기옥의 문화칼럼] 다산을 그리며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 입력 : 2023/12/1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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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 시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시사앤피플] 조선 오백 년의 역사에서 삼정승과 육판서, 대사간, 대사헌, 도승지 등 권력의 정점에서 화려하게 벼슬살이를 한 이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 중 세종대의 황희 맹사성과 같은 명신이나 영·정조의 채제공 등 일반인이 쉽게 떠올리는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당대를 호령하며 권력을 향유하던 그들은 간간한 문집을 남기기도 했으나 후세에 명망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계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한 이들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가 대표적인 경우다.

유배지에서 고립된 상황에 이르면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돌아본다. 오백여 권의 저서로 문화적 역량을 발휘하고 71세에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라는 글로 후세에게 늙음의 미학을 교훈한 정약용은 역설적으로 유배 18년이 학문의 전성기였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이 없으니

그대는 자신을 꽃으로 보시게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아플 터이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할 터이고,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여,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볼 것이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다.

 

나이 들어 노추(老醜)가 되지 말고 스승으로서의 인격을 갖추라는 <노년유정>이라는 교훈시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라는 말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다는 말의 가르침은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적확하게 제시한 방향타라서 감동적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유명 인사들은 위 시 <노년유정>을 칼럼에 인용하면서 목민심서정약용이라고 출처를 밝힌다. 그러나 거짓이다. 정체불명의 가항시(街巷詩). 새삼 정치인은 참을 위해 거짓을 말하고, 시인은 거짓을 위해 참을 말한다는 명언이 생각난다. 시나 소설은 허구, 즉 거짓 세상이다. 그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백태(百態)를 이야기하며 진실을 추구한다. 그래서 시는 정신을 맑히고 정서를 순화한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을 위한다는 참을 위해 온갖 수단의 거짓을 말한다. 실천력 없는 미사여구로 허황된 공약(公約)을 남발한다. 결국 공약(空約)으로 들통이 날 줄 알면서도 한결같이 국민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을 이야기한다. 시사평론이나 정치성 칼럼에 출처도 불명한 가담항설을 이용하면 자칫 거짓 진술의 허위로 이어질 수 있다. 내용이 좋아 눈감아 준다 해도 출처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위 시는 누군가가 71세 때의 다산이 쓴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보인. 나이가 들면 불편해지는 여섯 가지 건강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라며 백낙천의 문장 향산체를 본받아 쓴 장문의 시다.

유배가 없는 요즈음의 사회는 정치인과 무뢰한의 오만이 기사를 메우고, 가진 자의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 그래서 오만한 자나 갑질하는 자들의 유배를 부활하면 어떨까. 그것도 절해고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재탄생하는 기회로 제공하면 어떨까. 새삼 목민심서의 다산이 그리워진다.

 

 

*강기옥 시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기옥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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