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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 강기옥의 '흥청망청의 정치적 어원'

시사앤피플 | 기사입력 2023/07/21 [00:22]

[기자 칼럼] 강기옥의 '흥청망청의 정치적 어원'

시사앤피플 | 입력 : 2023/07/2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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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옥 시인 (문화전문 기자)   

  

[시사앤피플] 1505년에 채홍사’ ‘채청사라는 벼슬이 있었다. 채홍사는 기생 중에서 예쁜 기생을, 채청사는 여염집의 예쁜 처녀를 잡아들이는 벼슬아치다. 채홍사는 원래 채홍준사(採紅駿使)()’은 여자, ‘(駿)’은 말을 뜻한다. 그래서 채홍준사는 미녀 기생과 준마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연산군은 장악원 제조 이계동을 전라도에, 임숭재(임사홍 아들)를 충청도와 경상도에 파견하는 등 채홍사를 팔도에 파견하여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연산군 일기에는 남편과 아이가 딸린 기생은 채집의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연산군의 명령에 채홍사들이 그들을 빼면 숫자가 부족한데다 기생은 아이에 대한 애착심이 없으니 재고해 달라는 건의문이 보인다. 전국에서 미녀들을 끌어들인 연산군은 원각사를 폐지하여 기생양성소로 바꾸고, 학문의 전당인 성균관을 유흥장으로 만들었다.

  

이어 연산군은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로 인해 정신적 혼란을 보이더니 여인 집착증에 빠져 황음무도한 짓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큰어머니인 월산대군 부인까지 범하는 패륜을 저지르자 박원종 등이 주도한 반정으로 쫓겨났다.

 

폭군으로 변한 연산군은 기생의 명칭과 대우를 높여 체면을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궁궐에 들어오기 위해 여러 고을에 모아둔 기생을 운평(運平)이라 했고, 그들 중에서 뽑혀 궁궐에 들어가면 흥청(興淸)이라 한 것이다. 이들 중 임금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부류를 천과(天科) 흥청, 나머지는 지과(地科) 흥청이라 하고 흥청이 이동할 때는 사대부들이 가마를 메게 했다.

 

신분사회의 변화치고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일이다. 쫓겨난 어머니를 동경하며 기생들과 광적인 쾌락을 즐기는 여인 집착증을 보였다. 처용무를 비롯한 야한 춤으로 왕의 체면도 날리더니 스스로 말이 되어 기생을 태우고 술래잡기를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즐겼다.

 

연산군 못지않은 한으로 가슴을 졸이던 정조는 의연하게 꾸준히 힘을 모아 아버지를 신원하는 효성을 보였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아픔이 긍정적인 전이(轉移)로 나타나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남겼고 서호(西湖)와 같은 인공호수를 만들어 농업생산력을 향상했다. 민초들의 식생활을 해결하고 생활 수준을 높여 주는 지도력을 보인 것이다.

 

   연산군도 초창기에는 성군다운 기지를 보였다. 세종조에 젊은 문신들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휴가를 주었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부활하는가 하면 철갑옷과 투구를 만드는 비융사(備戎司)를 두어 국방을 튼튼히 했다. 인문학적으로는 여지승람을 완성하고  국조보감을 간행하는 등 문치에도 힘썼다. 그러나 폐비 윤씨는 아들에게 큰 짐을 남겨 놓고 떠났다. 살아있을 때의 실수가 죽어서도 후손에게 큰 짐이 되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연산군이 행차하면 수없이 많은 흥청들이 뒤따랐다. 이 소문을 들은 백성은 흥청을 망국의 원흉으로 보았다. 교태를 부려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권력을 즐기면 나라가 망한다 하여 흥청망청이라는 신조어로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지워버리고 싶은 수치스러운 역사가 민중의 가슴에 교훈적인 언어로 남은 것이다.

 

흥정망청은 재산이나 권력의 남용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일반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제 영역을 더 넓혀 무분별한 언어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선거철의 근거 없는 비방, 인터넷과 언론매체의 해악적 기사들이 사고의 고착을 유도하는 감정의 흥청망청이다.
 
요즈음 정치인의 언어는 연산군의 한보다 더 큰 돌덩이를 토해내는 듯하다. 품위 있게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적 언어는 자신도 아름다운 대상으로 숭앙받는다. 아무리 정치 권력에 눈이 어둡다 해도 품위 있는 언어로 사회를 계도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강기옥 시인(문화전문 기자)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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